나는 요근래 지드레곤을 보면서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1982년 나온 알란파크 감독의 문제작 핑크플로이드의 벽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핑크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게 된다. 늘 혼자인 핑크는 전쟁공포증과 더불어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런 부적응이 세상이 다 자신을 향해 쌓은 벽이라 생각한 그는 틀에
박힌 관념과 행동양식에 파괴의식을 느낀다. 성장하여 록스타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박수는 참을 수 없는 짐이 되고, 사랑에도 실패한 핑크는 세상과 벽을 쌓는 자학적인 행동을 하면서 소외되고 불안정한 생활을 지속한다.

그리고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음악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젊음을 억압하는 모든 벽을 부숴버리자 라는 식의 내용이 바로 영화 핑크플로이드의 벽 내용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써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센세이션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특히나 음악을 한다는 사람은 당연히 봐야 되는 저항. 항거 이 세상으로부터의 억압을 음악적으로 푸는 그런 식의 음악적 소산을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마 왜 갑자기 지드레곤을 보면서 이 영화가 생각났을까 의문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지드레곤을 처음에 볼 때 핑크플로이드의 주인공 핑크 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에 고리타분한 음악세계에서 마치 선구자 같이 혹은 강하게 저항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인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뮤지션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권지용은 저항하는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히 대형 기획사의 철저한 언플로써  찍어낸 기성품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 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면 여러 사람이 공장부품이 찍어나오듯 사람이 그것에 맞춰서 만들어지는 잘 만들어진 신상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드레곤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의 주인공처럼 이 사회에 고리타분한 사회논리에 앞서서 벽을 부수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갖추려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 사진속에 나온 벽처럼 계속 벽을 부수면 부술수록 또 다시 커지는 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 벽을 부시지 말고 편한 삶을...
혹은 이제 그 사회에 맞추면서 살라고 권유했을 것이다.


결국 사회에 그는 타협을 하게 되고. 심지어 그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기게 되고,
예술성보다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 되어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드레곤. 그를 둘러싼 가십거리.
그것은 절대로 키보드워리어가 내뿜는 악플이 아니다.

그나마 젊은 뮤지션 중에서 언플이라고 치더라도
실력있는 한국의 젊은 뮤지션 중에서 실력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지드레곤이 표절이라는 음악사에서 가장 치졸한 방법으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다른 노래를 표절로 삼았다는 것.

이 한국사회의 음악적인 세계가 다른 나라의 유명한 노래를 조금 도용하면서
입막음을 한다는 것. 그렇게 기성세대의 음악세계에 저항하려 했던 권지용의 모습이 되려 자신이 그 벽에 갇혀서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표절의 주축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지드레곤 권지용에게 바라는 말이 있다면 이런것이다.

음악인은 음악으로써 승부를 해야지 인기로써 승부를 하지 마라.
대형기획사(사회)가 만들어준 인기에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감추면서 인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지 마라. 그 순간 당신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자신의 입지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음악으로 승부하라. 음악을 처음 할때처럼 초심을 잃지 말란 이야기다.

나는 그러기에 지드레곤에게 핑크플로이드의 벽을 꼭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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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시선

이 시대의 전문가들은 많다. 하지만 실상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나는 전문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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