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바보를 들면서 드는 생각은
바보인 듯 하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철저히
하는 그런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답답하기에 보이지만 그것이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실한 시민의 모습이라는 것

나는 그바보를 보면서
두 캐릭터를 생각했다,

하나는 포레스트 검프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RUN! FOREST! RUN!
이라는 말로써 이 세상에 적응못하는 바보 포레스트에서
도망가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에게 이 사회에 돌팔매질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달리라고 말을 한다,

사실 검프는 영화속에서 보면 알다시피 잘못한 것이 없다.
단순히 영악한 세상사람들 틈에서 제대로 끼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해야 되나.
하지만 영화속에서 검프는 해피엔딩이다.
열심히 한 사람은 꼭 성공한다는 해피엔딩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구동백


몇몇의 사람들이 구동백의 캐릭터가 바보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저런 바보가 어디있냐고. 그런데 묻고 싶다.
그 사람을 바보로 칭하게 만든 것은 우리 사회가 붙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바보 같은 행동속에는 어찌보면 우리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즉 영악한 모습으로 세상을 교묘히 이용하지 못하는
너무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바보로 칭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보=구동백.
이 호칭은 어찌보면 구동백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호칭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구동백은 스스로
자신의 할일에 남들 피해없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노무현.


우리시대가 낳은 바보이다,

모든 사람들이 YES라고 말을 할때 NO라고 당당히 자신을
피력했던 사람.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권력층에 타협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과 타협을 하지 않고
결국은 간접살인을 당하고 만다.

우리시대가 낳은 바보였던 것이다,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타협안을 찾고 해결했을 텐데.
물론 불의한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바보 노무현은 끝끝내 자신의 원칙을 살다가
그렇게 세상을 등지게 된다,

나는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구동백과 검프처럼 해피엔딩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들에게 항상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시대의
인물로써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악한 정치계에서 그래도 인간다운 정치를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유일한 바보 노무현.

오늘 국민장을 치루는 날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블로그 이미지

일반인의 시선

이 시대의 전문가들은 많다. 하지만 실상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나는 전문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