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사실 어떠한 사전지식도 없이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어린 아이가 소송을 제기하는 장면에서

약간은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을 고소한다.
그것도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조항으로!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억지설정 자극적 소재의 영화로
인식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느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말이다.

사실 이 영화의 시사회는 여성관객을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후배를 데리고 갔다.

평소 감정이 메말라 안구에 콘크리트가 덮인 것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후배.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옆에서 내 후배는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남자의 눈물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이면 안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처럼 나와 후배는 서로 눈물 안흘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두 건조한 눈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누구나 아픈 사람이 있다면 공감을 할 이야기다.
그리고 누구 하나 악한 즉 평화로운 바닷가를 걷는 듯한 잔잔한 흐름이 주는 매력이다.

이 영화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성공할 영화는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알다시피 말초신경 자격하지 않는 영화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런 현실에서 언니를 위해서 만들어졌던 아이와 내 아이를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갈등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볼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꼭 사람들에게 봐야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블랙버스터 영화처럼 최소 300만을 손익분기점으로 따지는 그렇게 많이 봐야 되는
측면이 아닌 우리나라 영화 라디오스타 같이 철저하게 입소문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영화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보자.

당신은 어떤 사람을 가장 이해를 하는가?
사실 나는 이 영화에서 어머니가 가장 이해가 간다.
사실 지금 현재 우리집에서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영화와 같은 상황이 나한테 주어진다면 나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그 행동을 성윤리적으로 안좋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윤리적인 모든 강령을 어겨서라도 내 아는 사람이 안 아프게 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을 할 것이다.
사실 법률적인 해석. 그것보다 더 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한테 주어진 사랑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을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지켜만 보는 것이 사랑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봐야 된다는 것이
원칙이 아닐까?
이 문제는 법률적으로 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 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정말 유치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가족들 중에 만약에 암환자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처럼 그런 식으로 내 가족을
조금이나마 생명연장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질문에 답은 백과사전 식으로 이렇습니다. 라고 답을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만약에 백혈병에 걸린 케이트라면
언니 케이트를 위해 태어난 맞춤형 아기 안나의 입장이라면
그 어떤 희생도 불사하지 않는 엄마 사라의 입장이라면.

이라는 명제를 내놓고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는 어떠한 답도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만약에 그런 상황에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사고를 만들게 하고,
가족을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지금 현재 가족붕괴되는 현실인 우리나라 모든 이들이 꽉 봐야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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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시선

이 시대의 전문가들은 많다. 하지만 실상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나는 전문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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