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생 이기숙.

그녀는 저의 어머니입니다.
이기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나서

본인의 이름을 불리기 보다는 누구네 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나마 기숙씨라는 이름을 불릴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죠.

하지만 두 아이가 생기고 나서

빛바랜 사진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는 이기숙이라는 한 여인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누구의 아내. 혹은 ()()엄마 라는 호칭으로 불리웠습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때는 여러가지 운동도 많이 해서 어느 정도 날씬한 몸매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950년생이신데 키는 162센티미터 정도였다면 지금으로써도 작은 키는
아닐 정도로 그 당시에는 퀸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죠.

하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어머니는 조금씩 여인의 모습보다는 어머니의 모습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이 보여지는 아름다움 보다는 당신의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바란채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성한 두 아들을 둔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을
하게 되었죠.

이렇게 되기까지 어머니는 잠시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질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세탁일을 35년째 하시는 데

어머니가 세탁소에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가 드라이클리닝과 함께
다림질을 하신다면 어머니는 그 수선한 옷을 배달하는 것과 여러가지 미싱으로 밑단 같은 것을 줄이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 드라이 한 모든 세탁물을 주택가를 돌면서 배달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 배달을 할 수 있게 개조한 것에 세탁물을 들고
아파트 동으로 출발을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탁소 위치가 2층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1층의 세 값이 비싼 관계로 2층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죠.

예전에 젊었을 때에는 1층 2층이 그렇게 크게 안 느껴지셨지만
이제 환갑이 된 나이에는 한 계단 한 계단 배달물을 옮기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하루가 끝나고 나면 집에 들어오셔서

어깨와 발목 위주로 미니쑥뜸을 하시게 됩니다.

그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모르시고 그냥 뜸을 들이는 그 자체 만으로
위안을 삼는 것입니다.

병원진료. 그것은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어머니이십니다.
뭐라고 해야 될까요?

다 나이들면 다리가 아프게 되는 것이고 허리도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신체적으로 퇴행성 관절염 이 왔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고
디스크적인 측면도 나이가 들면 다 생긴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미리미리 건강검진을 통해서
관절나이와 함께 여러가지 검사를 못해드린 것으로써 자식으로써
정말 다른사람에게 부끄럽다고 해야 될 거 같습니다

단순히 어머니에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뼈건강에 좋다는 장어
같은 것을 사드리는 것 밖에는 못해드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우리 자식 효자다 하면서 흐믓해하셨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갑상선 암에 걸리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 가족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실은 저희 형 또한 갑상선 암으로 죽을 뻔하다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설마 어머니 마저 갑상선 암이 걸릴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몸이 아프셔서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내 자식이
이렇게 몸이 아팠었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형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아팠을 때
어머니도 아프셨는데 내색을 안하셨던 것이니깐 말이죠.
작년 형이 갑상선암으로 생사를 오고 갈 때 이미 어머니의 몸에서도
암세포가 있었다는 의사에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식이
아픈 상황에서 자신이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수술을 하셨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신기하신지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 '이기숙'이라는 이름을 간호사가 부르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이기숙이라는 이름보다는 저의 형의 이름인 태준엄마 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이 불리워졌으니 말이죠.

그렇게 어머니는 10일 동안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족들은 때아니게 건강의 소중함을 개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수술이 일어난 이후로는
제대로 걸음을 하지 못하십니다. 아직 환갑이라는 나이는 한창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갑상선 암수술로 인해서 여러가지 기능들이 더 안 좋게 된 듯 합니다.
어머니 수술로 인해서 또 하나의 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어머니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싱이 장기간 휴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스개소리로 이야기하십니다.
"나 때문에 이 녀석도 쉬게 되었네. 그 동안 녹슬지 않도록 기름칠 해야 되겠네."


그 이야기에 가족들은 쓴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어머니가 이야기한 이야기가 돌려서 이야기하면 자신의 몸이 굳어지기 전에 관리를 해야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설마 내가 그렇게 되겠어! 라는 그 생각이 병을 부른다는 이야기는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아니다. 그 생각이 병을 키우는 것이죠.
이제부터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관절운동이라던지 여러가지 디스크에 좋은 스트레칭 같은 것을 같이 해볼까 합니다,

첫 포스팅(http://v.daum.net/link/4233577 발레 10년 전문가가 말해주는 스트레칭)과 같이 저의 굳어졌던 관절건강을 위해서 늦었다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는 것처럼 어머니와 같이 간단한 관절에 좋은 스트레칭을 할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부모님의 건강 먼저 생각하시고 건강검진 받도록 하세요.
정말 나중에 병이 들고나서는 그 이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답니다,

특히나 관절이나 디스크 같은 경우는 초반에 스트레칭으로써도
충분히 잡을 수 있으며 미리 병원을 찾아가서 자신의 관절상태를 알아보고
그에 따라 대처해 나간다면 되려 그것이 돈을 아끼는 비법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건강하시고 이 시대의 어머니들 다들 자식들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당신들 건강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일반인의 시선

이 시대의 전문가들은 많다. 하지만 실상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나는 전문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